나는 대학교 교직원이다 3편 — 빈 화면 앞에서, 자기소개서와의 기나긴 싸움
사기업 자소서와 대학교 교직원 자소서는 애초에 다른 글쓰기입니다. 빈 화면 앞에서 시작된 자소서와의 싸움, 합격한 자소서의 공통점과 피해야 할 실수까지 풀어봅니다.

안녕하세요, 다루하루TV입니다!
'나는 대학교 교직원이다' 시리즈 3편으로 돌아왔습니다.
2편에서는 대학교 교직원이 되기 위해 쌓아야 할 스펙들과, 그 스펙을 쌓으며 지나온 외로운 시간에 대해 풀어봤었죠. 토익 900점의 벽을 넘던 이야기, 주말 도서관에서 한국사 인강을 듣던 사람들 사이에서 느꼈던 위로... 읽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번 편에서는 그 다음에 기다리고 있던, 어쩌면 가장 길고 지난했던 싸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바로 자기소개서입니다.
깜빡이는 커서 앞에서
처음 대학교 교직원 자기소개서를 쓰기 위해 한글 파일을 열었던 그날을 저는 아직도 기억합니다.
화면에는 채용 공고에서 복사해온 자소서 항목 네 개가 놓여있었고, 그 아래에는 아무것도 쓰여있지 않은 빈 공간이 있었습니다. 커서만 깜빡깜빡 하면서 저를 쳐다보고 있었죠.
"어... 뭘 써야 하지?"
지금이야 AI로 단 몇 분 만에 자소서를 써주지만, 제가 취업을 준비할 때만해도 AI가 없었으니 참 막막할 따름이었습니다.
물론 자소서를 쓰는 것이 처음은 아니었습니다. 사기업 인턴 지원할 때 썼었고, 퇴사 후에는 다른 사기업에 지원하면서도 여러 번 써봤죠. 그래서 '뭐, 내가 자소서가 처음은 아니니까 금방 쓰겠지'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단어 한 줄이 안 나오더라고요.
한 시간, 두 시간... 화면은 여전히 비어있었습니다. 대신 쓰다가 지우고, 쓰다가 지우기를 수십 번 반복하고 있었죠. 그제서야 깨달았습니다.
"아, 이거 내가 알던 자소서가 아니구나."
사기업 자소서와 대학교 교직원 자소서, 그 결정적 차이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다가, 저는 노트를 꺼내 들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물었죠. '뭐가 다른 거지? 왜 안 써지는 거지?'
그 고민 끝에 얻은 결론이 이것이었습니다. 두 자소서는 애초에 완전히 다른 글쓰기를 요구하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제가 그동안 사기업에 썼던 자소서를 한번 꺼내보니, 온통 이런 이야기들로 가득했습니다. 매출을 얼마나 올렸고, 남들과 어떻게 달랐고, 어떤 변화를 만들어냈고, 얼마나 도전적이었는지. 공격적이고, 경쟁적이고, 튀어야 하는 글이었죠.
그런데 대학교 교직원 자소서는 그런 이야기를 원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학교가 뽑고 싶어 하는 사람은 교육이라는 공간의 의미를 아는 사람, 오랫동안 책임감 있게 일할 수 있는 사람, 다양한 구성원들과 잘 어우러질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이런 느낌이었어요.
사기업 자소서가 '나를 봐 달라'고 외치는 글이라면, 대학교 교직원 자소서는 '나는 이 공간과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차분히 설득하는 글.
이 차이를 깨닫고 나서야 비로소 첫 문장이 써지기 시작했습니다.
'왜 하필 우리 학교인가'라는 무서운 질문
자소서를 쓰면서 저를 가장 괴롭혔던 질문은 따로 있었습니다.
"왜 하필 우리 학교에 지원하셨나요?"
이 질문, 모든 학교의 자소서 첫 번째 항목에 빠짐없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이 질문이 진짜 무서운 이유는, 모든 면접에서도 반드시 다시 나온다는 점이에요.
처음에 저는 이 질문을 굉장히 쉽게 생각했습니다. '뭐, 학교 홈페이지 슬쩍 보고 적당히 칭찬해주면 되겠지' 싶었죠. 그렇게 썼던 자소서의 첫 문장이 아직도 부끄러움으로 남아있습니다.
"귀교의 무궁한 발전에 기여하고자 지원하였습니다."
지금 보니 웃음이 나옵니다. 이 문장을 읽고 감동할 면접관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요? 당연하게도, 그 자소서는 서류에서 탈락했습니다.
그제서야 저는 진지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학교에 진짜 가고 싶다면, 이 학교에 대해 진짜 알아야 한다. 그렇게 학교를 파고드는 시간이 시작됐습니다.
- 학교 홈페이지의 모든 메뉴를 하나씩 클릭해봤고
- 총장님의 신년사와 취임사를 찾아 읽었고
- 학교 발전계획을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했고
- 최근 1년간 학교 관련 뉴스를 전부 검색해봤고
- 학교에서 진행하는 주요 교육 사업들을 하나씩 파악했죠
이렇게 조사를 하다 보니, 정말 신기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학교마다 색깔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 거예요.
A 학교는 산학협력에 진심이었고, B 학교는 지역사회 기여에 방점을 찍고 있었고, C 학교는 국제화에 사활을 걸고 있었습니다. 이 차이를 알고 나니, 같은 자소서로 여러 학교에 돌려막기가 절대 통하지 않는다는 걸 비로소 이해하게 됐습니다.
내 이야기가 없는 자소서의 공허함
학교 조사를 열심히 하고 나니, 이제 자소서가 술술 써질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웬걸, 또 다른 벽에 부딪혔습니다.
학교 이야기만 가득하고, 정작 제 이야기가 없었던 거예요.
'귀교는 ~한 비전을 가지고 있고, ~한 사업을 진행하며, ~한 인재상을 추구하는 학교입니다. 저는 이런 학교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이런 식으로 쓰니까, 읽어보면 학교 소개 브로셔 같은 느낌이 나더라고요. '아니, 그래서 넌 누군데?'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그런 글.
그때 제가 깨달은 게 있습니다. 좋은 자소서라는 건 결국 학교와 나 사이의 접점을 찾아내는 일이라는 것. 학교의 비전이 공중에 떠다니지 않게 내 경험이라는 땅에 뿌리내리게 해주는 작업이라는 것.
그래서 저는 학교의 키워드와 제 경험을 하나씩 짝지어보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 학교의 '지역사회 기여'라는 키워드 → 내가 학부 시절 참여했던 지역 봉사활동
- 학교의 '국제화 전략'이라는 키워드 → 내가 중국어를 공부하게 된 계기
- 학교의 '학생 중심 교육'이라는 키워드 → 내가 학부 시절 교직원분께 받았던 도움의 기억
이렇게 키워드와 경험을 엮어내니까, 비로소 나만 쓸 수 있는 자소서가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잊지 못할 학부 시절의 그 순간
자소서를 쓰면서 저는 제가 왜 교직원이 되고 싶은지를 스스로에게 자꾸만 되묻게 됐습니다. 그러다 문득, 학부 시절의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당시 저는 장학금 신청 때문에 학생지원팀에 찾아간 적이 있었습니다. 서류가 하나 부족해서 장학금 신청 자격이 안 된다는 답변을 받고, 이제 어쩌지 하는 마음으로 막 돌아서려던 참이었죠.
그때 한 교직원분이 저를 붙잡더니, "잠깐만요, 이 케이스는 다른 방법이 있을 수도 있어요" 하시면서 같이 관련 규정을 찾아봐 주셨습니다. 결국 대안이 되는 장학금을 찾아서 신청할 수 있었고, 그 덕분에 그 학기를 잘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분은 저를 기억하지 못하실 거예요. 아마 그날 그분께 저는 수많은 학생 중 한 명이었겠죠. 그런데 그 학생에게는 그날의 그 10분이 꽤 오래 기억에 남는 경험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자소서에 넣으면서, 저는 처음으로 '아, 나 진짜 이 일을 하고 싶구나'라는 감정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 감정이 글에 묻어나오기 시작하니까, 자소서의 결이 달라지더라고요.
진심은 글에 묻어납니다. 이건 정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켜야 했던 기본기
물론 진심만으로는 안 됩니다. 진심을 잘 전달할 수 있는 기본기도 필요했습니다.
자소서 쓰면서 제가 항상 지키려고 했던 기본기들이 있습니다.
첫째, 결론부터 쓴다. 면접관은 자소서 한 장에 많은 시간을 쓸 수 없습니다. 첫 문장에서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가 보여야 합니다. 뜸 들이면서 돌려 말하는 순간, 이미 다음 자소서로 넘어가 있을지도 몰라요.
둘째, 숫자와 사례로 증명한다. "열심히 했습니다"라는 말은 누구나 쓸 수 있는 말이에요. 그래서 저는 이런 추상어를 볼 때마다 스스로에게 질문했습니다. '얼마나?', '어떻게?', '구체적으로 뭐?' 이 질문에 답할 수 있을 때까지 고쳤습니다.
예를 들어 "학생회에서 열심히 활동했다"라고 쓰고 싶을 때는 이렇게 바꿨습니다.
"학생회 회계 담당으로 1년간 활동하면서 100여 명의 회비와 30여 건의 행사 예산을 관리했고, 엑셀 기반 자동화 시스템을 만들어 회계 오류를 0으로 줄였습니다."
셋째, 이 학교가 아니면 안 되는 이유를 쓴다. 이 부분이 가장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게 없으면 결국 '어디든 써먹을 수 있는 자소서'가 되어버립니다. 학교의 특색과 내 경험의 접점을 찾는 것, 이 작업을 포기하지 않는 게 중요했어요.
넷째, 입사 후의 그림을 보여준다. 읽은 사람이 '아, 이 사람이 우리 학교에서 일하면 이런 모습이겠구나' 하고 장면을 상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추상적인 각오가 아니라, 구체적인 업무 상황 속에서 어떻게 일할지를 그려주는 거죠.
퇴고, 퇴고, 또 퇴고
저는 한 자소서를 정말 많이 고쳤습니다. 20번, 30번은 기본이었던 것 같아요. 가족과 친구에게 보여주고, 유료 첨삭도 받아보고, 다시 혼자 읽으면서 또 고치고...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글이 내 글이 아닌 것 같은 이상한 순간이 옵니다. 같은 문장을 너무 여러 번 읽어서 어색하게 느껴지는 그런 상태. 이럴 때는 과감히 하루 이틀 자소서를 덮어두는 게 오히려 도움이 됐습니다.
그리고 다시 열어서 읽어보면 신기하게도, '아, 이 부분이 어색했구나', '아, 이 부분은 너무 뻔했구나' 같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자소서는 한 번에 완성되지 않습니다. 시간을 재료로 삼는 글이에요. 그래서 채용 공고가 뜨기 전부터 미리미리 자소서를 써두는 게 정말 중요합니다. 공고가 뜨고 나서 급하게 쓰기 시작하면, 아무래도 퀄리티가 떨어질 수밖에 없거든요.
합격한 자소서의 공통점 몇 가지
제가 합격한 자소서들과 떨어진 자소서들을 나중에 비교해보니, 합격한 자소서들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첫 문장이 뻔하지 않았습니다. '귀교의 무궁한 발전에 기여하고자...' 같은 문장은 없었어요. 대신 제 경험 속의 한 장면, 혹은 제가 이 학교에 대해 가진 생각이 한 줄에 담겨 있었습니다.
숫자가 있었습니다. 얼마나 오래, 몇 명과, 어떤 결과를 냈는지가 구체적으로 적혀 있었죠.
진심이 보였습니다. 이 부분은 설명하기 어려운데, 글을 읽으면 '아, 이 사람이 진짜 이 학교에 오고 싶어 하는구나'가 느껴지는 그런 결이 있었어요.
제 색깔이 있었습니다. 천편일률적인 모범생의 글이 아니라, '이 사람만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죠.
마지막에 장면이 그려졌습니다. 이 사람이 우리 학교에서 일하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상상되는 그런 마무리였어요.
피하려고 애썼던 실수들
반대로, 제가 처음에 자주 저질렀고 나중에는 절대 하지 않으려고 애썼던 실수들도 있습니다.
학교 이름만 바꿔서 돌려쓰기. 이건 정말 티가 납니다. 채용 담당자들은 수백 장의 자소서를 봅니다. '이거 다른 데도 제출했겠구나'가 보이는 글은 자동 탈락이에요.
이전 직장이나 사회에 대한 부정적 표현. 저도 사기업 퇴사 경험이 있다 보니 자칫 사기업을 깎아내리는 표현을 쓸 뻔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건 정말 위험해요. 이 사람이 우리 학교에 와서도 언젠가 비슷하게 얘기하겠구나 싶게 만드는 지름길입니다.
과장과 거짓. 사소한 경험을 포장하는 건 괜찮지만, 없는 경험을 있는 것처럼 쓰는 건 안 됩니다. 면접에서 꼬리 질문 몇 번에 다 들통납니다.
추상어 남발. '열정', '최선', '노력'. 이 세 단어를 저는 자소서에서 가능하면 쓰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이 단어들은 구체적 사례로 증명해야 하는 단어이지, 그냥 주장하는 단어가 아니거든요.
맞춤법 실수. 부끄럽지만 저도 제출 직전에 친구가 발견해준 오타 덕분에 창피를 면한 적이 있습니다. 이건 정말 기본 중의 기본입니다.
마무리하며
자소서를 쓰던 그 시간은 정말 제 자신과 오래 대화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나는 왜 대학교 교직원이 되고 싶은가?' '내가 걸어온 길에서 이 직업과 연결되는 경험은 무엇인가?' '나는 이 학교에서 어떤 사람으로 일하고 싶은가?'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글로 옮기는 작업이었죠. 그래서 자소서를 쓰다 보면, 스펙을 쌓을 때와는 또 다른 종류의 피로감이 찾아옵니다. 체력의 피로가 아니라 내면의 피로랄까요.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시간이 있었기에 면접장에 가서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자소서를 쓰며 내가 누구인지, 왜 이 길을 가려 하는지를 수없이 정리해본 사람은, 면접관 앞에서도 당당하게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거든요.
혹시 지금 자소서 앞에서 막막하게 앉아 계신 분이 있다면, 이 말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자소서는 완벽한 사람이 쓰는 게 아니라, 자기 이야기를 성실하게 정리한 사람이 쓰는 겁니다. 거창한 스펙이나 반짝이는 경험이 없어도 괜찮아요. 본인이 걸어온 길 속에 분명히 쓸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걸 찾아내는 게 자소서 작성의 진짜 시작이에요.
다음 편에서는 자소서를 통과한 후에 기다리고 있던 또 하나의 거대한 관문, 필기시험 이야기를 풀어보려고 합니다. NCS, 전공시험, 논술... 학교마다 어찌나 제각각인지. 그 험난한 여정을 함께 되짚어보겠습니다.
긴 글 끝까지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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